이번 시리즈는 국제 뇌과학올림피아드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“한국뇌캠프” 경시대회 준비에 도움을 드리기 위한 글입니다. 우리나라 정규 교육과정에는 뇌과학을 배울 수 있는 과목이 따로 없습니다. 생명과학 교과에서 뇌의 일부를 배우긴 하지만 경시대회를 준비하는데 내용이 매우 부족합니다.
이 시리즈를 통해 다뤄지는 내용은 “한국뇌캠프”의 공식 교재인 <BrainFacts>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, 추가적인 자료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.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링크를 통해 실제 교재를 다운 받아 공부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.
아직 뇌과학 올림피아드에 대해 모르고 있다면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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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뇌기능의 놀라움은 감각부터 시작됩니다.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세상에는 색도, 소리도, 냄새도 없습니다. 그저 빛 에너지, 기체의 파동, 화학 물질 뿐입니다. 이러한 물리화학적 에너지가 ‘정보’를 갖게 되는 것은 전부 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.
그 중 우리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감각은 시각입니다. 실제로 우리 대뇌 피질의 30%는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데 관여합니다. 이렇게 중요한 시각에 대해 가장 먼저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.
1. 시각: 눈은 카메라, 뇌는 포토샵
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빛을 통해 ‘본다’는 감각을 경험합니다. 어두울 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‘빛’이 시각의 필수적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. 그러나 빛이 닿는 것만으로 무엇인가를 ‘본다’고 할 수 있을까요?
사실 빛이 눈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정보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. 실제 ‘본다’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뇌입니다. 눈은 그저 빛을 뇌에 전달해 주는 생물학적 구조물로서 카메라의 역할을 수행합니다.
눈의 구조를 보면, 카메라와 같이 그 목적은 빛을 모아 한 지점으로 보내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.
가장 먼저 각막(pupil)을 통해 들어온 빛은 수정체(lens)를 통과하며 굴절됩니다. 수정체는 볼록 렌즈의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빛을 한 데 모읍니다. 그렇게 굴절된 빛은 망막(retina)의 한 점에서 모여 상을 형성합니다. 이 점을 중심와(fovea)라고 부릅니다.

눈은 빛을 굴절시켜 상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‘망막의 상은 반대로 맺힌다’는 사실이 자연스레 뒤따라 옵니다. 한 지점을 기준으로 위쪽에서 전달된 빛은 수정체를 통과하며 아래쪽으로 굴절되고, 그 빛은 상대적으로 아래쪽에 맺히게 되어있습니다. 그러므로 망막에 맺힌 빛은 실제로는 상-하 및 좌-우 반전이 된 상태입니다.
이제 망막에 맺힌 빛 에너지는 망막 신경세포에 의해 뇌가 이해할 수 있는 전기 신호로 바뀝니다. 이를 전환(transduction)이라고 부릅니다.
<글쓴이의 노트>
전환(transudction)은 '감각한다'고 정의하기 위한 필수 현상입니다. 물리적 자극을 전기적 신경신호로 변환하는 그 과정 자체가 감각의 기능입니다.
빛의 경로: 각막 - 수정체 - (유리체) - 망막
2. 망막: 세 겹의 필터
망막에는 광수용세포(photoreceptor), 연합신경세포(interneuron), 그리고 신경절세포(ganglion cell)가 있습니다. 이 중 광수용세포가 빛에 직접 반응하는 세포입니다. 그러므로 광수용세포는 빛이 신경신호로 전환되는 첫번째 관문입니다.

<글쓴이의 노트>
신경절세포 중 내재적 감광성 신경절세포(intrinsically photosensitive retinal ganglion cell)라는 세포 또한 빛에 직접 반응합니다. 그러나 감각 및 지각의 맥락에서 광수용세포 보다 중요성이 떨어지기에 따로 공부해보시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.
2-1. 광수용세포: 원추세포와 간상세포, 밝은 밤눈을 설명하다?
광수용세포는 원추세포(cone)와 간상세포(rod)로 이루어져 있습니다. 원추세포는 더 잘 반응하는 빛 파장대에 따라 다시 세 종류(S-cone, M-cone, L-cone)로 나눠집니다. 이러한 원추세포의 특징 덕분에 인간은 색을 구분합니다.

예를 들어, 파란색에 해당하는 짧은 파장의 전자기파가 망막에 도달하면 짧은 파장의 원추세포(S-cone)는 활발하게 반응합니다. 반면 나머지 두 세포(M-cone, L-cone)는 상대적으로 덜 반응합니다. 이러한 세포 활성의 차이는 파란색을 감각하기 위한 기초적인 정보가 됩니다.
만약, 특정 원추세포의 수가 적으면 어떻게 될까요?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색약(color blindness)입니다. 세 종류의 원추세포가 각기 다른 활성을 전달하여 색에 대한 정보를 만들어야 하지만, 색약은 한 종류의 정보 자체가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. 가장 흔한 것이 적록색맹으로 L-, 또는 M-원추세포가 결핍되어 있습니다.
추가적으로 이러한 원추세포는 중심와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습니다.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중심와에 맺힌 시각 자극을 가장 예민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.
<글쓴이의 노트>
원추세포의 이름인 cone은 말 그대로 '(아이스크림)콘' 모양이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. 반면 간상세포의 이름인 rod는 '막대' 모양이기에 붙여졌습니다. 이처럼 많은 경우 이미 알고 있는 물체의 이름을 이용해 세포 이름을 정합니다. 또 다른 예로 피라미드 세포가 있어요.
다음으로, 간상세포는 원추세포보다 더 약한 빛에도 잘 반응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. 이 간상세포는 전체 광수용세포의 95%를 차지하고 있으며, 중심와(fovea) 바깥쪽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습니다.

<글쓴이의 노트>
간상세포의 특징은 밤 하늘을 올려다볼 때 재미있는 현상으로 이어집니다. 우리가 어떤 별을 보고 싶을 때, 그 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별 바깥에 초점을 맞추면 주변시를 통해 그 별을 더 잘 볼 수 있습니다. 이는 우리의 간상세포가 초점 바깥쪽에 분포하고 있기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.
추가적으로, 중심와 바깥쪽에 원추세포와 간상세포가 함께 있는 황반(macula)이 있습니다. 이 영역 또한 중심와 만큼은 아니지만 물체를 식별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. 이 곳에 문제가 생기는 병을 황반변성(macular degeneration)이라 부르는데, 55세 이후에 잘 발생하며 가장 흔한 실명의 원인이 됩니다.
2-2. 신경절세포: 뇌로 정보를 보내다
광수용세포를 통해 전환된 빛 정보는 신경절세포(ganglion cell)로 전달된 뒤 시신경을 통해 뇌로 보내집니다.
<글쓴이의 노트>
아직까지 우리는 망막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. 그러나 광수용세포에서 신경절세포로 이동하는 과정 중에서도 의미있는 정보 처리가 시작됩니다.
2-2-1. 수용영역(receptive field)
시각 세포는 공간상 위치 정보를 처리합니다. 이를 수용영역(receptive field)이라 부릅니다.
예를 들어, 정면을 바라봤을 때 왼쪽 상단에서 전달된 빛은 망막의 오른쪽 하단으로 전달됩니다. 이 영역의 광수용세포는 다음 신경절세포로 신경신호를 전달합니다. 이 예시에서 두 종류의 세포는 동일한 수용영역(receptive field)을 갖습니다.
이 수용영역은 정보가 전달되며 넓어집니다. 이는 하나의 세포가 여러 세포로부터 신호를 전달받을 때 발생합니다. 예를 들어, 10개의 광수용세포가 1개의 신경절세포로 신호를 보내면 이 신경절세포는 10개의 광수용세포 수용영역을 갖게 됩니다. 보통 시각 정보가 처리되며 수용영역은 더 넓어집니다.

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보가 손실 되기도 합니다. 대표적으로 눈 초점의 가운데는 명확히 보이지만, 그 주변부는 흐릿하게 보이는 현상이 이를 반영합니다. 즉, 눈 초점가운데의 신경절세포는 좁은 수용 영역을 갖지만 초점 주변의 신경절세포는 넓은 수용 영역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.
2-2-2. 수용영역의 중심-주변 길항작용(center-around antagonism)
물체를 가만히 보면 그 모서리의 명도 차이가 조금 더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. 이 현상은 헤르만 격자 착시(grid illusion)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. 이 착시는 모든 하얀 선 명도가 같을지라도 교차점은 어둡게 보이는 착시입니다.

이는 물체-물체, 물체-배경을 구분하기 위한 우리 눈의 기능 중 하나입니다. 이러한 시각적 처리를 중심-주변 길항작용이라 하며, 이 또한 망막에서부터 시작됩니다.
중심-주변 길항작용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양극성 세포(biopolar cell)에 대해 새롭게 소개드려야 합니다. 양극성 세포는 그 모양이 두 방향으로 돌기를 뻗고 있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. 이 세포는 광수용세포와 신경절세포 사이의 중간 전달자 역할을 수행합니다.
재미있게도 양극성 세포는 빛이 있다고 반드시 활성을 보이지는 않습니다. 어떤 양극성 세포는 빛이 있을 때 활성을 보이는(ON-양극성세포) 반면, 다른 양극성 세포는 빛이 없을 때 활성(OFF-양극성세포)을 보입니다.
<글쓴이의 노트>
ON-양극성세포와 OFF-양극성세포가 어떻게 그 특징을 갖는지 알기 위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기전을 이해하는게 필요합니다. 이는 각 세포가 발현하고 있는 수용체와 측면 억제(lateral inhibition)의 기전이 결합되어 있습니다.
ON-양극성세포와 OFF-양극성세포를 통해 중심-주변 길항작용을 다시 설명해보겠습니다.
밝은 면만 바라보게 된다면 ON-양극성세포는 활성화되지만 동시에 OFF-양극성세포는 비활성상태가 될 것입니다 (아래 그림에서 맨 밑 그림). 그 결과 서로 상쇄되어 전체 신호의 양은 적어질 것입니다. 반면, 명도 차이가 분명한 경우 밝은 영역에서는 ON-양극성세포가, 어두운 영역에서는 OFF-양극성세포가 함께 활성화 됩니다.

그러므로 명도 차이가 있는 시각적 자극의 경우 더 많은 신경절세포 활성으로 이어지며, 이것이 물체의 모서리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 주어 물체를 ‘감각-인지’할 수 있는 생물학적 기전이 됩니다.
2-2-3. 맹점 (blind spot)
맹점은 망막의 구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또 다른 시각 현상입니다. 망막의 구조상 신경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신경다발은 눈 뒤쪽으로 빠져나가게 됩니다. 이 위치에는 광수용세포가 놓일 수 없게 됩니다. 그러므로 해당 영역에 빛이 전달되더라도 신경신호로 전환되지 않으며, 그 위치가 바로 맹점이 됩니다.

그러나 우리는 맹점을 일상 속에서 경험하지 못합니다. 그 이유는 우리의 뇌가 맹점을 ‘채워 넣기’ 때문입니다. 이는 물리적 자극 자체가 아닌 뇌가 감각을 만든다는 또 다른 놀라운 일례입니다.
3. 마치며
이번 글에서는 시각처리 중 뇌 이전까지 과정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. 다음 글에서는 빛 정보가 뇌에 전달 되는 과정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.